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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다양한 라인업에 독보적 역사를 가진 포르쉐, 코드네임 996

by 모빌리티그라운드 2022. 1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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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들은 1997년 프랑크푸르트의 IAA 국제 모터쇼에서 처음으로 911을 보고 놀랐다. 이미 여러 가지 관습을 깬 자동차였기 때문이다. 대폭 수정된 아이코닉 911 디자인과 리어엔진 드라이브 콘셉트를 제외한 모든 것이 새로워졌다.

공랭식 대신 수랭식을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986세대 박스터와의 획기적인 부품 공유 콘셉트로 B 필러까지 996과 박스터의 인테리어가 동일했다. 변하지 않은 것은 6기통 박서 엔진이었다. 새로운 것은 엔지니어들과 디자이너들이 많은 것들을 원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우구스트 아흐라이트너(August Achleitner)는, "오래된 습관을 벗어던져야 할 때"라는 말을 남겼다. 1989년부터 2000년까지 그는 '스페셜 프로젝트를 포함한 테크니컬 프로덕트 플래닝, 자동차 콘셉트 및 패키지' 부문의 책임자였으며, 전체적인 996 자동차 콘셉트의 전략 책임자이기도 했다.

그는, "포르쉐는 더 많은 판매 대수를 위해 더 낮은 가격의 자동차가 필요했다. 그래서 이런 전략은 박스터와 996이 부품을 공유하는 아이디어로 이어졌다."라고 말한다. 신형 911이 911처럼 보여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어떤 엔진이 탑재될 것인지는 처음에는 전혀 알 수 없었다.

또, "공랭식 실린더당 2밸브 설계가 배기가스와 출력 측면에서 기술적으로도 도로 주행에 맞춰야 했기 때문에 엔진의 테스트가 필요했다. 그리고 공랭식 4밸브 박서 엔진은 우리가 손을 댈 수 없는 다양한 핫스폿이 있었기 때문에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1989년 소형 V8 엔진이 시험적으로 탑재되기도 했지만, 그 아이디어도 곧 폐기되었다. 결국 우리는 수랭식 4기통 박서 엔진을 탑재하게 되었다."라고 덧붙였다.

 

부품 공유 콘셉트

 

996 시리즈의 등장은 1990년대 수석 디자이너 함 레가이(Harm Laggij)가 이끈 것이다. 그는 당시 자동차 업계에서 유일하게 프런트에서 B 필러까지 똑같은 스타일의 미드십 엔진 로드스터와 리어엔진 쿠페를 만드는 전략을 사용한 디자이너로 당시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는, "이 과제는 엄청난 도전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먼저 다양한 박스터 996의 매칭 부품을 설계함으로써 어려운 문제를 해결했다."라고 말한다. 시간 제약으로 인해 모델러는 1:1 스케일 모델에서 직접 작업할 수밖에 없었다. 모든 것을 예정대로 진행하기 위해 포르쉐는 추가로 많은 전문가들을 참여시켜 레가이의 팀을 최대 80명까지 늘렸다.

최종 선정된 두 개의 디자인이 1993년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선보인 박스터 콘셉트카와 유사했던 덕분에 공식 데뷔할 때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박스터 콘셉트카는 관람객들을 열광시켰고 결국 'Best of Show'에 선정되었다. 라가이는 "나는 쇼카의 프런트엔드가 996에도 어울릴 것이라는 것을 보는 순간 알았다. 사람들이 잊고 있는 것은 우리가 세 가지 버전(996, 986, 콘셉트카) 동시에 작업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고객들이 자동차에 대한 정보를 알게 되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수석 디자이너는 당연히 996, 911 그리고 986 박스터 모델을 같이 공유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도 알고 있었지만, 다른 우려들은 "회사를 구해야 한다는 압박과 절박함이 최우선이었다."라고 말했다.

새로운 부품 공유 개념은 서스펜션에서 전기부품, 차체 및 전체 패키징에 이르기까지 프런트 엔드에 관련된 모든 부서에 영향을 미쳤다. 아흐라이트너는, "이 프로그램은 우리가 좋은 투자 수익률로 두 차량을 모두 30,000대 이상 판매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또한 1997년 출시된 996보다 1년 전인 1996년에 박스터가 출시된 이유이기도 하다. 이 전략은 효과가 아주 좋았다. 996 세대 911은 연간 30,000대 이상 판매되었으며, 전체적으로 50,000대에서 60,000대를 판매했다. 

내부적으로 이 콘셉트 또는 디자인에 대한 비판은 전혀 없었다. 반대로 헤드라이트 유닛의 형태와 효과는 통합된 방향지시등에 대한 부분은 언론에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이런 부분들은 디자이너들에게 놀라움으로 다가왔다. 이 디자인은 불과 얼마 전까지 박스터 콘셉트카에서 크게 칭찬받은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라가이는, "디자인은 정말 독특했다. 하나의 모듈에 다섯 가지 기능을 탑재했는데, 이 기능은 비용이 많이 들지 않으며 생산 라인에서 몇 분 만에 설치할 수 있는 것이었다."라고 말했다. 

 

1998년, 카브리올레 등장

 

1998년 4월, 카브리올레는 전동식으로 20초 만에 개폐가 이루어지며 쿠페의 뒤를 이었다. 소프트톱을 접을 경우 메탈 커버 플레이트 아래로 사라지면서 별도의 루프 커버가 필요 없게 되었다. 6개월 후, 포르쉐는 911 베이스의  쿠페와 카브리올레 버전으로 4륜 구동 911 카레라 4를 라인업에 추가했다. 

2001년 1월부터는 420PS의 출력을 내는 트윈 터보 엔진을 탑재한 전륜구동 카레라와 최고 속도 305km/h를 내는 4륜 구동 911 터보를 선보였다. 이것은 모두 계획의 일부였다. 아흐라이트너는, "996의 설계 시, 우리는 4륜 구동 시스템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변속기 터널을 충분히 크게 만들었다. 이를 위해 약간의 타협이 필요했다. 부품 공유 계획 때문에 박스터도 이런 세부 디테일을 가지고 있었지만 4륜 구동 모델에서는 사용할 수 없었다."라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터보 버전과 카레라 4 버전이 사전에 계획되어 있었지만 1995년 5월, 911 GT3는 정말 우연한 기회에 출시되었다. 모터스포츠 규정의 변화로 포르쉐는 911의 360PS 출력을 내는 버전을 인증을 위해 의무적으로 생산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모델은 911 카레라 RS의 후계자가 되었다. 

아흐라이트너는, "상업적인 성공과 판매 대수는 처음에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911 GT3는 독자적인 길을 걷기 시작했다. 996 세대의 911 GT3를 통해 우리는 일상적인 911과 모터스포츠에서 영감을 받은 모델과의 분명한 차이를 깨달았기 때문이었다."라고 말했다. 

이후 2001년 1월 911터보를 베이스로 462PS의 출력을 내는 3.6리터 박서 엔진을 탑재하고, 최초로 세라믹 브레이크를 기본 사양으로 탑재한 최초의 모델인 911 GT2를 출시했다. 

996세대는 2002년 다시 한번 변화했다. 배기량은 3,596cc로 늘었으며, 출력도 320PS까지 향상되었다. 그리고 와이드보디워크를 진행한 911 터보와 함께 911 타르가와 911 카레라 4S 카브리올레가 라인업에 추가되었다.

996세대의 오픈 톱 4S 버전은 2003년 출시되었다. 2004년에는 카브리올레 버전의 터보와 345PS의 출력을 내며 스포츠 서스펜션과 일렉트릭 선루프가 장착된 911 카레라 쿠페의 '911 40주년' 기념 모델을 출시했다.

2005년부터 터보 S는 450PS 출력을 내는 쿠페와 카브리올레 버전으로 출시되었다. 996 세대만큼 많은 911의 다양한 모델 라인업이 있었던 적은 없었다. 그리고 포르쉐는 약  175,000대 이상을 계속 판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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