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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쉐 911 카레라 RS 2.7, 의미 있는 50주년 이야기

by 모빌리티그라운드 2022. 6.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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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전, 포르쉐는 레이싱과 랠리를 위한 새로운 자동차를 세상에 내놓았다. "덕 테일(Duck tail)", "RS", "2.7" 오늘날 포르쉐 911 카레라 RS 2.7은 다양한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독일에서는 가장 빠른 양산형 모델이었으며, 프런트와 리어에 모두 스포일러를 장착한 최초의 양산형 모델이었고, 특히 리어 스포일러는 "덕 테일(Duck tail)"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1972년 포르쉐는 양산형에 리어 스포일러를 장착하는 트렌드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포르쉐는 약 50년 전 911 카레라 RS 2.7의 개발을 시작했다. "포르쉐의 양산형 모델의 테스트를 책임지고 있는 피터 폴크(Peter Falk)는, "911 카레라 RS 2.7은 인증을 위한 특별한 모델이었다. 매우 빠르고 가벼운 스포츠카를 만들려는 의도에서 시작된 것이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비록 911을 베이스로 했지만, 많은 기술적 혁신들이 더해져 레이싱과 랠리를 치를 수 있는 새로운 모델로 탄생했다. 911의 가장 강력한 1세대 모델은 포르쉐 최고의 이름인 '카레라(Carrera)'라는 이름을 갖게 된 최초의 911이기도 하다. 중량, 에어로다이내믹스, 엔진 그리고 섀시 모두 집중적으로 작업이 진행되었다. 1972년 5월부터 약 15명의 엔지니어가 이 차의 개발에 참여했으며 생산 담당 직원들과 함께 개발이 진행되었다.

 

깜짝 놀랄 정도의 성공

 

포르쉐는 처음에는 그룹 4 스페셜 GT 클래스에 참가하기 위해 911 카레라 RS 2.7을 500대만 생산할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이 차들은 레이싱 이벤트에 참가하기 위한 고객들에게 일반 도로 주행용으로 인증을 받아 전달되었다.

1972년 10월 5일, 베르사유에서 개최된 파리 모터쇼에서 신형 모델이 세상에 공개되었다. 11월 말까지 500대가 모두 판매되었다. 포르쉐는 이 차의 성공에 깜짝 놀라 1973년 7월까지 생산량을 3배 더 늘리기로 결정했으며, 총 1,580대가 생산되었고 1,000번째 차량이 생산되면서 포르쉐 911 카레라 RS 2.7은 그룹 3과 그룹 4에 모두 참가할 수 있게 되었다.

옵션으로 M471 장비 패키지를 구성해 포르쉐는 200대의 경량 '스포츠' 버전을 제작했다. 그리고 55대의 레이싱 버전, 17대의 기본형 모델, 1,308대의 투어용 모델을 제작했다. 

911 카레라 RS 2.7 'Light'(M471)의 인테리어는 고객의 요구사항과 생산 날짜에 따라 옵션을 조정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뒷좌석, 플로어 매트, 시계, 코트 걸이, 암레스트 등이 옵션에서 제거되기도 했다.

고객의 요청에 따라 2개의 경량 시트 쉘이 더 무거운 스포츠 시트로 대체되기도 했다. 심지어 보닛의 포르쉐 문양도 처음에는 접착제로 붙이기도 했다. 'Touring' 장비 패키지(M472)와 비교했을 때 'Sport'는 무게가 115kg 가벼워졌으며, 공차중량은 960kg에 불과했다. 당시 가격은 34,000 독일 마르크였다.

스포츠 패키지(M471)은 700 독일 마르크였으며, 투어링 패키지(M472)는 2,500 독일 마르크였다. 이 가격이 더해져 장비 패키지를 장착한 911 카레라 RS 2.7의 최종 가격이 결정되었다.

2.7리터 수평대향 6기통 엔진은 6,300rpm에서 210PS의 최고출력을 냈으며, 5,100rpm에서 26.0kg.m의 최대 토크를 냈다. 0-100km/h 가속은 5.8초면 충분했으며 이 성능 덕분에 911 카레라 RS 2.7은 독일 트레이드 저널인 'auto, motor und sport'에서 6초대의 벽을 깬 최초의 양산형 모델이 되었다. 최고 속도는 245km/h였으며, 투어링의 경우 0-100km/h는 6.3초, 최고 속도는 2240km/h였다. RS 2.7은 무게, 성능, 에어로다이내믹스 그리고 핸들링 모든 측면에서 가장 이상적인 자동차였다.

보디는 모두 경량화에 집중했다. 얇은 철판, 얇은 윈도, 플라스틱 부품의 사용과 흡음재 제거는 레이싱카의 중량을 900kg 이하로 줄이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최초의 리어 스포일러

 

911 카레라 RS 2.7은 에어로다이내믹스 역시 개선되었다. 목표는 프런트 엑슬과 리어 액슬의 리프트를 고속에서 최소화하여 더 안정적인 핸들링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었다. 엔지니어였던 헤르만 버스트(Hermann Burst)와 틸만 브로드벡(Tilman Brodbeck)은 스타일리스트 롤프 바이너(Rolf Wiener)와 함께 처음으로 리어 스포일러를 개발해 풍동 테스트 및 실제 트랙 테스트를 진행했다.

911 고유의 차체 스타일을 유지하고, 최적화된 공기 흐름을 위해 급격하게 경사를 그리는 리어 라인의 단점을 보완하고 911의 에어로다이내믹스를 개선하는 것이 당시의 목표였다.

새로운 형태의 덕 테일은 911 카레라 RS 2.7에 더 강력한 다운포스를 만들어 내고 고속주행 시 더 안정적인 주행이 가능해졌으며 리어엔진에 추가적인 냉각을 위한 공기를 공급하는 역할도 담당했다. 실제 이 효과는 공기역학계수의 증가 없이 가능했으며, 실제로 최고 속도가 4.5km/h 더 빨라졌다.

피터 폴크는, "테스트 중에, 우리는 더 높게 솟은 스포일러를 사용할 경우 드래그 감소로 인해 최고 속도를 더 높일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우리는 한계 포인트를 찾을 때까지 리어 스포일러를 위쪽으로 밀리미터씩 계속 올려가며 테스트를 진행했다."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1972년 8월 5일, 포르쉐 직원 3명은 특허를 위해 문서번호 제2238704호를 독일 특허청에 제출했다.

엔지니어들도 섀시 작업에 착수했다. 포르쉐는 리어 휠이 더 큰 레이싱에서의 경험을 쌓아왔기 때문에 개발 엔지니어들은 911 카레라 RS 2.7에서도 이 기술을 적용했다. 폴크는, "우리는 리어 액슬에 더 넓은 타이어를 장착해 트랙션과 핸들링을 개선하고자 했다."라고 회상한다. 덕분에 포르쉐 최초로 양산형 모델에 프런트 액슬과 리어 액슬에 크기가 다른 타이어가 장착될 수 있었다.

훅스(Fuchs) 단조 6 x 15J 휠에 185/70 VR-15 타이어를 프런트에 장착했으며, 7 x 15J 215/60 VR-15 타이어를 리어에 장착했다. 보디에 맞추기 위해 포르쉐는 특별히 리어 휠 아치를 42mm 더 넓게 제작했다. 폴크는, "개발, 생산 및 판매  단계에서 모두 잘 맞았기 때문에 후속 모델들은 당연하게 이런 조합을 적용할 수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스포츠 프로토타입을 위한 규정이 변경되면서 새로운 3리터 엔진 제한의 규정에 묶여 포르쉐는 그동안의 성공적인 시대를 마감할 수밖에 없었다. 1972년 11월 투르  코르세에서 911 카레라 RSR(Racing-Sport-Racing)의 첫 데뷔 이후 포르쉐는 9173년의 911 성공신화의 새로운 시작을 선언했다.

그해 2월 초, 피터 그렉(Peter Gregg)과 헐리 헤이우드(Hurley Haywood)가 탑승한 RSR이 데이토나 24시간 레이스에서 22랩을 리드하며 1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이 순간이 새로운 시즌을 시작하는 영광스러운 순간이었다. 그리고 헐버트 뮐러(Herbert Muller)와 기스  렌넵(Gujs van Lennep)은 1973년 5월 타르가 플로리오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폴크는, "이번 승리는 리어 윙이 더 큰 RSR이 서킷과 랠리 무대에서 매우 빠르다는 것을 증명했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이점이 매우 중요했다."라고 회상했다. 첫 시즌에 911 카레라 RSR은 3개의 인터내셔널 챔피언십과 7개의 내셔널 챔피언십을 우승하며 향후 10년간의 911 시리즈의 영광의 시대를 만드는 기초를 세웠다. 1973년 10월 개최된 IROC(International Race of Champions)에서 미국의 로저 펜스케(Roger Penske)는 각각 다른 레이싱 클래스에 총 12대의 911 카레라 RSR 3.0을 출전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911 카레라 RS 2.7과 함께 포르쉐는 레이싱 트랙을 위한 스포츠카뿐만 아니라 고객들이 일상생활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자동차를 개발하고 있었다. 그것은 그랜드투어링카를 레이싱 트랙에까지 사용할 수 있는 것을 의미했다. 당시 광고에서는 이렇게 표현을 했다. "레이스 트랙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일상이다. 월요일은 당연히 출근이다. 화요일에는 제네바로, 수요일엔 도심의 교통체증에도 불구하고 쇼핑을 즐긴다. 목요일엔 시골의 도로와 고속도로 그리고 다양한 길을 달리고 금요일에는 짧은 거리만 이동한다. 토요일은 핀란드로 여행을 떠난다. 카레라 RS, 스프린터는 물론 마라톤까지 모든 것이 가능하다."

 

카레라(Carrera)라는 이름

 

처음으로 '카레라(Carrera)'라는 이름이 911 카레라 RS 2.7의 휠 아치 사이의 사이드에 새겨졌다. 스페인어로 'race'를 의미하며, 리어 스포일러의 RS는 'Rennsport' 즉 독일어로 레이싱 또는 레이싱 스포츠를 의미하는 것이다.

포르쉐에게 '카레라 판아메리카나(Carrera Panamericana)'는 새로운 이름의 영감이 되었다. 1953년 포르쉐는 550 스파이더와 함께 내구 레이스에서 퍼스트 클래스 우승을 차지한다. 그리고 1954년 이 차는 전체 3위를 차지하게 되는데 이것이 새로운 이름을 붙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포르쉐는 1954년형 4 캠샤프트/퍼먼 엔진을 장착한 강력한 성능을 자랑하는 자동차, 예를 들어 356A 1500 GS 카레라 또는 356 B 2000 GS 카레라 GT에 카레라를 붙이기 시작했다. 1963년부터 포르쉐 904 카레라 GTS의 리어에 새겨지기 시작했으며, 1965년부터는 906 카레라 6의 프런트 휠 아치 뒤의 윙에 새겨지기도 했다.

당시 사람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카레라는 "레이스 트랙과 랠리 서킷에서 자신을 증명한 기술적 섬세함을 표현하는 품질에 대한 증명"으로 이해되기도 했다. 간단히 말하면, 미래의 911 최고급 모델에 대한 이상적인 이름이기도 했다. 당시 포르쉐의 디자이너였던 함 라가이즈(Harm Lagaaij)는, "우리는 이미 유명한 이름이었던 'Carrera'를 양산형 모델에 붙이고 싶었고 어떻게 해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라고 회상했다. 결국 그들은 휠 아치 사이에 넣는 것으로 최종 결정했다. 

포르쉐는 카레라 레터링 외에도 29가지 컬러를 사용할 수 있으며 일부는 눈에 띄는 컬러를 선택할 수 있고 27가지는 브라이트 옐로, 레드 그리고 블러드 오렌지 같은 컬러를 포함하고 있다.

또한 포르쉐는 고객이 원하는 컬러를 구현해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림에 추가되는 컬러는 차체 또는 사이드의 카레라 레터링과 같은 컬러를 넣을 수 있는데, 예를 들어 화이트 컬러를 선택한 카레라에 레드, 블루 또는 그린 컬러의 레터링을 넣는 방식이다. 이 레터링은 오랫동안 이름을 알린 유명한 RS의 약어처럼 지금까지도 그 의미를 유지하고 있다. 50년 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가장 스포티한 911에서 지금도 찾아볼 수 있다.

2022년 9월 20일부터 포르쉐 박물관은 911 카레라 RS 2.7의 5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 전시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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